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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그림자-박물관 소장 아시아 불교 예술의 미

인도에서 기원한 불교는 아시아 문화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기원전 6세기 석가모니가 불교를 창시한 이래 12세기 말 이슬람교도가 대거 유입될 때까지 불교는 장장 1,700여 년 동안 발전했습니다. 불교의 발전 과정에서 교리와 종교적 내용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해 왔으며 이데올로기 역시 체계가 더욱 완벽해졌습니다. 각 왕조 통치 계급의 지지를 받아 널리 보급되고 승려들과 행상들의 왕래가 끊임없이 빈번해짐에 따라, 인도 불교 신앙은 나날이 확대되어 중앙아시아, 중국, 티베트, 몽골, 스리랑카, 동남아시아 등지까지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북아시아는 중국과의 왕래가 빈번했기 때문에 불교는 순조롭게 조선반도와 일본까지 전파될 수 있었고, 오늘날 불교는 아시아 전역에서 풍부하고 다양한 문화의 꽃을 피워냈습니다.
 
아시아 각 지역의 불상이나 경전은 비록 모두 중생의 고통을 해결하고 수행으로 얻은 깨달음의 경지 등 종교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지만, 각 지역의 문화적 기반과 자양분의 차이에 따라 근원은 같지만 흐름은 다른 다양한 “동원이류”의 지역적 특징을 발전시키며 끝없이 변화하는 부처, 보살, 천왕, 호법 등의 이미지를 만들어 냈습니다. 제각각의 사경 방식과 장황 모양을 기반으로 아시아 불교 예술을 다양한 특색으로 화려하게 꽃피웠습니다.
 
“탄생의 희열”, “부처의 지혜”, “보살의 자비”, “경장의 전파”와 “밀교의 신비”의 5개 단원으로 나뉘어진 이 전람은 시간을 축으로 각 지역의 불상과 경전을 함께 전시함으로써, 불교 예술의 “불변”과 “변화”를 표현하고, 참관객을 동일한 시대 서로 다른 지역의 불교 예술의 아름다움과 그 심오한 종교 이치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제 1장

탄생의 기쁨


전설에 의하면, 카필라바스투(Kapilavastu) 왕국의 왕자였던 싯다르타는 그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태어나서 7걸음을 걸었고, 그의 걸음마다 연꽃이 피어났으며, 하늘과 땅을 가르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개고 아당안지” (天上天下,唯我為尊,三界皆苦,吾當安之) 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 후, 용왕이 왕자의 목욕을 위해 향수를 토해냈다. 이러한 전설적인 이야기 속의 싯다르타 왕자가 바로 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이며, 이로 인해 그의 탄생일을 「욕불절(浴佛節)」이라고도 한다. 매년 음력 4월 초팔일인 석가탄신일에는, 수 많은 불교 사찰에서는 여전히「욕불(浴佛)」이라는 종교 의식을 거행한다. 한 손으로는 하늘을, 또 한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는 현존하고 있는 많은 탄생불상은 이「욕불절(浴佛節)」의식과 관련이 있다.

佛塔欄楯

불탑난순(佛塔欄楯)

  • 인도 말토라(Marthura) 지역
  • 쿠샨 왕조(1세기-320)
  • 2-3세기
  • 홍사암,높이 93cm


위 작품은 인도 말토라 지역의 홍사암을 착각(鑿刻)한 문물이다. 고대 불탑난순의 일부분이며, 두 개의 세로란(直欄)과 세 단의 가로순(橫楯)의 조합으로 이루어져있다. 세로란 의 정면에는 나뭇가지에 기대어 있는 야크샤(Yaksa)가 부조(浮雕)되어 있고, 가로순에는 각종 연꽃 문양이 조각되어있다. 이는 쿠샨 왕조(1세기~320년)시기에 일반적이었던 조각품이다. 야크샤 상은 온화한 얼굴을 하고 있고,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으며, 가슴은 풍만하다. S자 형태로 몸을 비틀고 있어 가는 허리부터 넓은 둔부까지 곡선을 그려내고 있으며, 피부는 윤기 있고 탄탄해 보인다. 이러한 작품의 풍격은 이 지역의 수 많은 2,3세기의 작품과 일치한다.

야크샤는 옛 인도인들이 숭배하던 지모신(地母神)이자 나무에 사는 정령이다. 그녀의 풍만한 가슴과 큰 둔부의 형상은 풍요와 다산의 상징이었으며, 나뭇가지에 기대어 있는 자세는 풍요를 기도하는 오랜 의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야크샤 신앙은 후에 불교에 흡수되어 불교 수호신 중 하나가 된다.


誕生佛

생불의 탄생(誕生佛)

  • 명(1368-1644)
  • 16 세기
  • 동 도금
  • 높이20cm
  • 펑카이동(彭楷棟) 님 기증


불교 사원에서는 부처의 탄생일(4월 4일)에 욕불(浴佛) 의식을 거행한다. 정수, 찻물, 오색수(五色水) 등을 제공하여 신도들이 탄생불상 위에 물을 붓도록 하는데, 이러한 이유로 관불회(灌佛會)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의식의 특수성으로 인해, 현존하는 대부분의 불상은 동으로 제작되었고, 크기도 10~30cm 사이의 작은 편에 속한다.

본 탄생불상의 외형은 도록3의 모습과 흡사하다. 정수리에는 육계(肉髻)가 없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신생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사각의 각진 얼굴과 큰 귀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눈썹 사이는 백호(白毫)로 가득 차있고, 양 볼은 통통하다. 눈꺼풀 위 아래로 깊은 안선(眼線)이 새겨져있고, 입꼬리가 위를 향하고 있어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한 편평한 오관(五官)의 얼굴이다. 몸은 둥글고 살집이 있으며, 상반신이 다소 길다. 연주문(連珠紋)으로 장식된 모란(牡丹)문양의 배두렁이를 입고 있으며, 옷에 연결된 띠 부분은 매우 솜씨 좋게 어깨의 접합 부분을 가리고 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탄생불상과도 같다. 배두렁이는 신체에 밀착되어 있는데, 이는 돌출되어 있는 상복부를 강조할 뿐 아니라, 허리 부위을 살짝 드러내기도 한다. 이는 대략 16세기 명대 말기의 작품으로 여겨진다.


제 2장

붓다의 지혜


깊은 지혜를 지닌 석가모니는 불어(佛語)로 해탈의 길을 일깨워주는 초기 불교의 유일한 종교적 지도자였다. 그러나 「모든 중생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眾生皆有佛性)」라는 내용의 대승불교에서는, 다른 시공 속에서 미륵불(彌勒佛), 무량수불(無量壽佛), 약사불(藥師佛)과 같이 다양한 부처가 존재하고 있다고 여겼다. 아시아 각지의 불상은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았고, 각지 불교 문화에 맞춰 날로 성숙해졌으며, 각각 독특한 예술적 풍격을 드러내며 발전해갔다. 뿐만 아니라, 붓다를 표현한 각종 도상(圖像) 안에는 각기 다른 지역과 민족의 특성이 잘 반영되어 있다.

坐佛

좌불(坐佛)

  • 인도 카슈미르
  • 645혹은 653년
  • 황동,양감은(鑲嵌銀), 홍동(紅銅)
  • 높이29cm


위의 불상은 황동을 주입하여 제작한 것으로, 눈의 흰자와 입술을 각각 은과 홍동으로 상감하였다. 이러한 공예기법은 캬슈미르의 조형 작품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교를 향한 신심이 깊었던 이 지역은 쿠샤왕조의 간다라 예술의 영향을 깊이 받았을 뿐 아니라, 굽타왕조의 전성기를 지나오며 카슈미르만의 독특한 조형 작품을 만들어냈다.

위의 좌상은 결과부(結跏趺)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석사자(石獅子)상 위에서 솟아오른 양복련(仰覆蓮) 장식의 단 위에 앉아있다. 머리카락은 빽빽한 나발형이고, 얼굴은 둥글고 턱은 두툼하며, 달 모양의 눈썹은 얇고 길다. 두 손은 전법륜인(轉法輪印)를 하고 있지만, 오른손은 여전히 옷 끝자락을 잡고 있다. 간다라식의 건장한 체격 및 엄숙한 표정을 제외한 조밀하게 처리된 옷주름, 신체의 구조 및 곡선의 구분이 분명한 점 등은 대좌명문(臺座銘文)에 표시된 당시의 기법과 완전히 일치한다. 대좌상의 공양하는 이들은 옷섶이 교차되는 상의에 긴 바지를 입고 있는데, 이는 당시 황실 의복의 특징이었다.위 조형물은 카슈미르의 7세기 중엽 작품의 정수인 동시에 현존하는 문물 중 제작년도가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 작품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제 3장

보살의 자비


「이타정신(利他精神)」은 대승불교의 정수로서, 중생들을 구제하기로 결심한 보살은 대승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대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보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한데, 그 중 미래 세상에서 성불한 미륵보살과 대자대비(大慈大悲)한 관음보살은 대중들로부터 큰 추앙을 받고 있다. 조각상의 수량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세상에 알려진 시간도 가장 길고, 분포된 지역 역시 가장 광범위하다. 동시에 불교 전파 과정중, 보살의 신앙 및 도상(圖像) 역시 각지 문화와 긴밀히 결합하여 인도와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발전해갔다. 그 예로서 중국의 송자관음(送子觀音), 대리국의 역장관음(易長觀音) 등이 있다.
 

彌勒菩薩

미륵보살(彌勒菩薩)

  • 파키스탄(고 간다라)
  • 쿠샨 왕조 ( 1세기-320)
  • 3세기
  • 편암
  • 높이168.5cm


간다라는 고대 인도의 국명으로, 비옥한 인더스강과 카불 하류 지역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현재의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일부 지역도 포함된다. 이 지역은 장안(長安)과 로마를 잇는 실크로드에서 꼭 거쳐야하는 곳이었기에 동.서 문화의 집결지였다. 또한 간다라는 알렉산드로 대왕에게 정복당하여 그리스 문화의 영향도 크게 받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서양의 색채가 농후한 조각의 형태를 발전시키게 되었다. 이 곳은 인도 중부의 말토라 지역과 함께 인도 쿠샨 왕조 조각상의 대표 지역이다.

위 보살상은 눈두덩이가 움푹 들어가고, 콧대가 높으며, 물결 모양의 곱슬머리가 어깨까지 내려와있다. 또한 알맞은 신체 비율은 웅건함과 우뚝 선 자태를 돋보이게 한다. 매우 세밀하게 장식된 구슬 목걸이를 하고 있으며 두툼한 천의(天衣)와 하의의 옷주름이 입체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러한 풍격은 서양 문화의 강렬한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

본 보살은 오른손으로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으며, 왼손이 들고 있는 것은 정병(淨瓶)으로 미륵보살이 자주 들고 있는 물건이다. 미륵보살은 미래 세상에서 중생들을 구해준다고 알려져있다. 현존하는 수 많은 쿠샤왕조의 유물을 통해 미륵보살을 향한 당시의 신앙이 얼마나 왕성했는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阿嵯耶觀音菩薩

아차야 관음보살(阿嵯耶觀音菩薩)
 

  • 대리국(大理國)(운남937-1254)
  • 12 세기 초중반
  • 동 도금
  • 높이52.5cm
  • 펑카이동(彭楷棟) 님 기증


아차야 관음은 진신관세음(真身觀世音)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는 중국 운남(雲南) 지역에만 존재하는 관음 신앙으로, 중고시기(中古時期)에 운남 지역에 나라를 세운 남조(南詔)와 대리국(大理國)에서 가장 사랑 받았던 신(神)적 대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남조 초기에 범승(梵僧)으로 화현(化現)한 그의 도움으로 남조의 국력이 날로 강성해졌다고 한다.

위 보살의 정수리 부분에는 앉아 있는 부처 형상의 높은 계관이 씌워져있고, 가지런하게 땋은 머리가 양 쪽에 늘어뜨러져있다. 이당(耳璫)은 역장관음보살(易長觀音菩薩)의 입상(立像)과 흡사한 모습이다. 이마는 낮고 넓으며, 양 눈썹은 서로 이어져있다. 눈은 가늘고 코는 낮으며 입술은 두꺼워 동남아시아 민족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자세는 다소 경직되어 있으며, 몸매는 가늘고 편평하다. 상반신이 드러나 있으며, 어깨 부분에는 구슬을 엮어 만든 넓은 목걸이를 하고 있다. 안위인(安慰印)과 여원인(與願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으며, 삼각형 형태의 비천(臂釧)과 구슬로 만든 팔찌를 하고 있다. 하반신에는 끈으로 묶어 고정한 긴 치마를 입고 있으며, 꽃으로 장식된 허리끈이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인도 차이나 반도의 불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위 불상의 크기, 풍격, 머리 장식, 장식 기법 및 의복의 규칙적인 호선(弧線) 문양 등은 대리국 국왕이었던 단정흥(段政興, 1147-1172재위)이 제작하고, 현재 미국 샌디애고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는 아차야 불상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이 불상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이라 여겨진다.


제 4장

경장의 변천


고인도 시기, 붓다의 가르침은 구술의 방식으로 전해졌으나, 그 후에는 교파의 계승 혹은 다른 문화를 가진 아시아 각지로 전파됨에 따라 점차 다른 언어와 문자로 내용을 기록하게 된다. 산스크리트문, 팔리문, 한문, 티벳문 등은 서로 다른 불교 문화를 드러내는 불경 및 각 지역의 풍격을 담아낸 불교 문서 등을 표현하고 있고, 만주문, 미얀마문 등은 불교 경전의 다양한 특성을 드러내고 있다. 본 장에는 고궁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불교 경전, 사본 및 판각본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위 서적들은 문자가 다를 뿐만 아니라 연대와 지역 상의 차이로 인해 장정(裝幀)의 방식 역시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內府泥金寫本藏文龍藏經》

《內府泥金寫本藏文龍藏經》

《이금(泥金)을 사용하여 티벳문으로 기록한 용장경》

  • 청 강희(康熙) 8년(1669)《이금(泥金)을 사용하여 티벳문으로 기록한 용장경》
  • 자청지(磁青紙), 이금(泥金: 목판, 금, 채화),양감보석(鑲嵌寶石)
  • 매 페이지 길이 33cm ,너비87.5cm


불교 경장(經藏)인《용장경(龍藏經)》의 원래 이름은 티벳어인 칸규르(Kangyur)이며, ‘불어(佛語)의 번역’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경(經), 율(律)의 두 부(部)로 나누어져 있고, 《비전주림초편(秘殿珠林初編)》24권에는 「(강희황제의 조모인 효장) 태황태후께서 제작을 명하셨다. 보석으로 양감하고, 자청전(磁青箋), 이금서(泥金書), 서역의 글자로 만들어진 이 용장경은 총 108본이며, 입으로 전해진 석가모니의 말을 기록한 모든 경전이다.」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데, 위의「입으로 전해진 석가모니의 말」부분이 바로 칸규르(Kangyur)를 의미한다. 이 칸규르 사본은 청의 강희황제의 조모인 효장태왕태후(孝莊太皇太后) 박이제길특씨(博爾濟吉特氏) 포목포태(布木布泰)가 강희 6년(1667)에 사본을 명한 것이다. 사본은 강희 8년(1669)에 완성되었고, 함약관(咸若館)에 보관하였다. 이는 청에서 간사(刊寫)한 많은 칸규르 가운데 가장 아름답고 주목 받는 작품이다.

전질(全帙)은 총 108함(函)이고, 함수(函數)와 분류의 순서는 모두 영락(永樂)8년(1410)에 남경에서 완성된 영락판 칸규르와 같다. 경(經)을 먼저, 율(律)을 나중에 담았고, 경전은 위계에 따라 높은 것에서 낮은 순으로 6부로 나누어 배열되었다. 이는「비밀부(秘密部)」,「반약부(般若部)」,「보적부(寶積部)」,「화엄부(華嚴部)」,「제경부(諸經部)」,「율부(律部)」로서, 수록된 경전은 총 1,057종이다.

경전은 세로 87.5cm가로33cm이며, 모든 함은 각 경전의 내용에 따라 삼백에서 삼백 오십여 쪽으로 다양하다. 이는 모두 특별 제작한 푸른 종이 위에 티벳문을 이금한 사본이다. 모든 함의 앞, 뒤쪽에는 각각 경전 내부 보호판이 있고, 황금색의 경례어(禮敬語)와 일곱가지 색의 형상이 있다. 이는 부처, 보살, 본존, 호법, 조사 등이고, 각종 보석을 양감하여 장식했으며, 표면은 노랑, 빨강, 초록, 파랑, 하얀색으로 수를 놓아 장식했다 . 경전 내부 보호판에는 카타(khata)를 올린 후, 경전옷으로 경함을 보호하는데, 이 경전옷은 무늬 없는 노란 실크, 노란 무명, 수가 놓여진 노란 실크 소재의 세 종류가 있다. 경전옷 위의 일곱 색상의 끈으로 경전을 묶고, 그 앞, 뒤쪽에 하나씩 있는 판 위의 다섯가지 색상의 끈으로 다시 경전을 둘러 묶는다. 마지막으로 노란 무명으로 된 경전옷을 입힌다.


《용장경(龍藏經)》두 겹의 황색 단직(緞織) 소재 경전옷의 내부 보관함 : 황색 바탕 위에 용 문양과 여의운문(如意雲紋)을 금사로 수놓은 화단(花緞)
  • 청 강희(康熙) 8년(1669)《이금(泥金)을 사용하여 티벳문으로 기록한 용장경》Tha 함(函)의 관련물품
  • 비단
  • 세로194 cm 가로203.4cm

《용장경(龍藏經)》의 매 함(函)은 네 겹의 경전옷으로 싸여져있는데, 세 번째 경전옷은 비단을 겹쳐 재봉하여 만들었다. 우측 상단부 끝에는 가로 485cm, 너비 6.5m의 일곱 색깔의 고정끈이 연결되어 있다. 경전옷의 가장 바깥층은 무늬가 없는 황색 비단이며, 3과 2/3폭의 천을 이어 제작하였다. 중간층은 바로 이번에 전시하는 황색 바탕 위에 용 문양과 여의운문(如意雲紋)을 금사로 수놓은 화단(花緞)이다. 세 폭의 천을 재봉하여 제작하였고, 금사와 여러 색의 융을 사용하여 만든 일곱 개의 용 문양이 자리한다. 용 문양은 2-3-2의 방식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4가지 색상으로 구성된 매우 정교한 구름 문양이 용 문양을 정사각형 형태로 에워싸고 있다. 가장 아래층은 다갈색 바탕 위에 절지 매화와 절지 목련 문양을 교차하여 장식한 제화(提花) 암화단(暗花緞)이다.

만주문으로 기록된《총관내무부당안(總管內務府檔案)》에 의하면, 「칠용주포불경포복일백영팔(七龍綢布佛經包袱一百零八)」과《용장경》경판은 금사를 넣어 짠 장화단(妝花緞)을 사용하였으며, 이는 모두 강희 6년-8년 사이에 효장태황태후(孝莊太皇太后)의 명을 받들어, 중국 남방의 3곳의 방직소에서 함께 제작한 것이다. 본 전시품은《용장경》108함(函)의 티벳문 일련번호Tha함(函)에 속한 것이다.
 


제5장

밀교의 신비


밀교는「비밀불교」를 뜻하며, 인도에서의 불교 발전 과정 중 마지막 단계이다. 이 시기의 불교는 힌두교와의 대적으로 인해 유식철학(唯識哲學)을 기초로 하던 본존관(本尊觀) 사상에 인도의 전통 주문, 만다라, 화공(火供) 등의 의식을 흡수하였고, 여러 개의 머리와 팔을 가지거나, 분노한 모습, 여성의 모습을 한 존상(尊像)이 대량으로 출현하였다. 탄트라는 제작된 연대와 내용에 따라「크리야(Kriya)」,「카르야(Carya)」,「요가(Yoga)」,「아누타라요가(Atuttarayoga)」의 네 종류로 나뉘는데, 아누타라요가는 ‘아버지 탄트라’와 ‘어머니 탄트라’ 로 다시 세분화된다. 중국 당대(唐代)와 일본의 밀교는 카르야 탄트라를 가장 중시 여겼고, 티벳의 밀교에서는 ‘아누타라요가’ 가 성행하였다. 밀교미술의 내용은 매우 풍부하며, 다원화된 면모를 띠고 있다.

大日如來三尊像


대일여래삼존상(大日如來三尊像)

  • 태국 혹은 캄보디아
  • 크메르 왕조(802-1432),12세기 말 -13세기 초
  • 동유금(銅鎏金)
  • 높이22cm
  • 펑카이동(彭楷棟)님 기증


쌓아올린 사각형 대(台) 중앙의 좌불은 양 손으로 선정인(禪定印) 모양을 하고 있고, 빙빙 둘러감긴 일곱 마리의 뱀의 몸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 자세로 앉아있다. 불상의 뒷쪽에는 부채 형태를 한 장식이 세워져있다. 좌불은 전형적인 크메르 제국(Khmer, 802-1431)의 조형 기법으로 꾸며져있다. 좌불의 머리 위에는 보관(寶冠)이 씌워져있고, 이당(寶冠), 목걸이, 팔찌를 하고 있으며, 삼포트(sampot)를 입고 있다. 가슴 부분에 있는 사선은 상반신에 걸치는 가사(袈裟)를 입고 있음을 암시한다. 좌불의 양측에는 팔이 네 개인 관음과 반약불모(般若佛母)가 부처를 모시고 있다.

과거에는 중앙의 좌불과 뱀의 모습이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등의 소승경전(小乘經典)에 기록된 뱀의 왕 무차린다(Mucalinda)가 부처를 보호한 이야기에서 유래되었을거라 여겼으나, 근래의 연구는 밀교의 존격(尊格)인 대일여래(密教尊格)에 그 무게를 싣고 있으며, 10세기경 크메르에 전파된《진실섭경(真實攝經)》 과 관련이 있다고 추측된다. 위의 삼존상 가운데 네 팔을 가진 관음과 반약불모 모두 밀교의 존격이므로 이 추측에 힘이 더욱 실린다. 네 팔의 관음, 반약불모, 대일여래는 각기 자비와 지혜, 그리고 그 두가지의 결합을 의미한다.
 

持鉞刀黑天


지월도흑천(持鉞刀黑天)

  • 티벳 중부, 덴사틸 스타일
  • 명(1368-1644),14-15세기
  • 청동유금(紅銅鎏金),양감보석(鑲嵌寶石),국부상채(局部上彩)
  • 높이32.6cm
  • 펑카이동(彭楷棟)님 기증


대흑천(大黑天)은 장전불교(藏傳佛教)의 무상유가밀종 (無上瑜伽密宗)에서의 호법(護法)이며, 인도의 시바 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비록 머리와 팔의 갯수는 다르지만, 분노한 모습과 작고 뚱뚱한 몸이라는 공통 특징을 보인다.위의 흑천은 한 개의 머리와 두 개의 팔을 가지고 있고, 오른손에는 금강월도(金剛鉞刀)를 쥐고 있으며, 앞 가슴 쪽의 왼손으로는 선혈이 가득 든 해골 사발을 들고 있다. 오른쪽 다리는 구부리고 왼쪽 다리는 쭉 편 자세로 서있는데 이런 종류의 대흑천을「지월도흑천(持鉞刀黑天)」이라고 부른다. 의궤(儀軌)에 의하면, 그에게는 노려보고 있는 세 개의 눈이 있고,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으며, 혀는 말려 있다고 한다. 또한 수염, 눈썹, 머리카락이 모두 곧추서서 위를 향하고 있고, 작은 키에 살이 쪘으며, 배가 나오고, 사지에는 힘이 실려 있으며, 머리에는 오고루관(五骷髏冠)을 쓰고 있다. 목에는 오십여 개의 사람 머리를 엮어 만든 목걸이를 하고 있고, 호랑이 가죽으로 된 치마를 입고 있다.

위의 조형은 유금(鎏金)기법을 이용하였고, 구슬 목걸이에는 각종 보석이 박혀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는 티벳 중부 지역인 덴사틸의 풍격에 속한다. 덴사틸의 절은 1158년 팍모 두빠 도제 갤뽀(Phagmo Drupa Dorje gyalpo,1110-1170)에 의해 지어졌고, 13세기 초부터 현지의 랑씨 가문(rLangs)에서 주지의 역할을 맡았다. 그들은 몽골의 왕자인 훌라구(Hulagu, 1217-1265, 쿠빌라이의 동생)의 보호를 받았고, 14세기 중반에는 싸자(Sa skyas)로부터 정권을 빼앗아 티벳에서 가장 큰 권세를 누렸다.

杜爾噶砍殺魔牛


악마 소를 베어 죽이는 두르가

  • 인도 동북부 혹은 벵갈
  • 팔라 왕조, 12세기
  • 홍동(紅銅),유금(鎏金) 의 흔적
  • 높이38.5cm


두르가는 법문으로「가까이하기 어려운」의 뜻이다. 시바(Siva)의 배우자인 파르바티(Parvati) 의 분노한 모습을 담고 있으며, 그녀는 힌두교의 성력파(性力派)에서 가장 중요한 숭배 대상이다. 이 분파는「샥티(「Shakti:우주의 힘)」를 우주의 근원인 브라마(Brahma)라고 여겼다. 그녀의 팔은 각기 다른 경전에 의해 8개, 16개, 18개 등으로 다양하게 묘사된다.

위 작품은 두르가가 악마의 소인 아수라를 죽인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수라가 삼계(三界)에 해악을 끼치자, 모든 신들이 모여 강력한 에너지인 샥티를 만들어냈고, 이 샥티는 여신 두르가의 형상이 되었다. 모든 신들은 각각 그녀에게 무기를 주었고, 힘겨운 전투 끝에 결국 그녀가 악마의 소를 죽인 이야기이다.

이 작품에서 두르가는 팔이 열 개이며, 작품의 바닥 부분에는 소의 머리가 잘려있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는데, 악마 소의 목 부분에서 아수라의 모습이 보이고 있다. 두르가의 오른쪽 다리는 타고 있는 사자 위에 세워져있고, 왼쪽 다리는 악마 소를 밟고 있다. 한 손으로는 아수라를 잡고, 또 다른 손으로는 삼지창을 들어 그의 몸을 찌르고 있다. 나머지 손에는 각각 검, 화살, 절굿공이, 갈고리가 달린 밧줄, 방패, 활, 도끼, 안쿠스를 들고 있다. 작품의 대(台)는 다각형 모양을 하고 있고, 그 뒤에 화려하게 빛나는 배 모양의 후광은 화염을 톱니모양으로 단순하게 표현해낸 것이다. 이는 팔라 왕조(Pala, 750-1199 )말기 조형품의 특징이며, 전체적으로 역동적이고 파워풀한 이미지를 잘 표현하였다.

관련 정보
  • 행사일시 상설전시
  • 위치 3F S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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