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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전람

상설전시
동아시아 차문화전
품차(品茶, 차를 음미하는 것)는 생활이고 풍조이고 예술이고 문화이다. 차의 고향은 중국이다. 차는 초기에 갈증을 해소하고 약으로 음용하며 끓여서 천천히 음미하던 것에서부터 오늘날 가볍게 타 먹거나 우려먹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에 걸쳐 발전해 왔다. 차 제조 방식의 변화에 따라, 다기의 형식과 차를 즐기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겼다. 중국의 차 문화는 사신과 무역을 통해 널리 전파되었으며, 몽골과 티벳 사람들의 일상생활에 녹아들어 유목 민족의 차 음용 방식과 다기를 발전시켰다.
또 중국의 차 문화는 당송 시대에 견당사, 유학승 및 상인들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지게 되었으며, 현지의 문화 정신과 행다례에 녹아들면서 근엄한 일본식 다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명나라 말에는 푸젠(福建) 승려가 민(閩)식 차 음용법과 의흥(宜興) 다기를 일본에 가져갔는데, 일본 문인들의 청담(淸談)한 차 음용법과 결합하여 ‘센차도(煎茶道)’를 형성하였다.
차를 마시는 습속은 명말청초에 중국 남동부 해안 일대의 이민자들의 자취를 따라 대만에 전해지고, 이어서 민월(閩粵, 중국 푸젠 및 광둥) 지역의 ‘공부차(工夫茶)’의 차 음용 전통도 대만에 정착하여, 지금은 단지 차를 음미하는 차원을 넘어 예술 영역으로 한층 더 발전하였다.
이번 전시는 위에서 서술한 맥락에 따라 ‘중국의 차 문화', ‘일본의 차 문화', ‘몽골, 티벳의 차 문화', ‘대만의 공부차’ 등 4개의 세션으로 구성하였으며, 차 문화와 관련된 원내 소장품을 전시하였다. 또한 명대의 다실인 차랴오(茶寮), 일본 다실인 차시쓰(茶室), 몽골과 티벳의 밀크티 나이차(奶茶) 공간 및 현대 다실 등 시뮬레이션 공간을 전시하여, 다양한 차 문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각 지역의 고유한 차 문화와 다양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관련 정보
  • 행사일시 상설전시
  • 위치 2F S202
당대(唐代)
당대 장사요(長沙窯)녹유단병호(綠釉單柄壺)
  • 높이(뚜껑포함)18.5cm 구경(口徑)4.9cm 족경(足徑)7.4cm
위 호(壺)는 둥근 주둥이와 타원형의 몸통 형태를 하고 있다. 주구(注口)는 짧고, 손잡이는 장방형(長方形)으로 속이 비어있다. 손잡이 중간 부분에서 동그란 구멍이 보이는데, 이는 뚜껑을 끈으로 연결해놓기 편하게 만든 것이다. 구연부(口沿部)와 권족(圈足) 을 제외한 작품 전체에 녹색빛의 유약이 발라져있다. 유색은 유탁(乳濁)한 청록색이고, 유층이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유면(釉面) 위로 미세한 관입이 많이 보인다. 뚜껑은 푸른 빛을 띠고 있으며, 유약이 몰린 부분에는 푸른 반점이 있다.
호(壺) 측면에 하나의 손잡이가 있는 형태는 당대 말기에 성행하였다. 절강(浙江)의 월요(越窯), 호남(湖南)의 장사요(長沙窯) 를 비롯한 남북의 각 요에서 제작되었으며, 석기(石器)로도 제작되었다. 장사요는 대부분 단병호(單柄壺), 다병(茶瓶), 다완(茶碗), 다말합(茶末盒) 등의 일상 다구를 제작하였는데, 이들 대부분은「다완(荼埦)」,「다잔자(荼盞子)」,「대다합(大茶合)」(삽도(插圖)5-6), 「진국다병(鎮國茶瓶)」(부도(附圖) 2)과 같은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를 통해 호남 지역에서 차 마시는 문화가 매우 성행했음을 알 수 있다.
단병호는 단류다병(短流茶瓶)과 마찬가지로 당대 말기에 물을 부어 차를 우리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그 형태와 구조가 본 박물원이 소장하고 있는 여산석단병호(驪山石單柄壺) (도판(圖版)4) 및 국립 타이중 자연과학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당대활석다기(唐代滑石茶器) 세트 중, 작은 단병호와 매우 흡사하다. 당대 말기에는 다잔에 차를 우려 마실 수 있는 손잡이 달린 다병이 유행했는데, 이를 「급수(急須)」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는 단병호의 형상이 송대 사람인 황상(黃裳)이 지은 〈용봉다기조각선사(龍鳳茶寄照覺禪師)〉라는 시에 등장하는 동남부의 다기 ‘급수’ 와 비슷하기 때문이며, 이 다기의 용도는 찻물을 끓이는 것이었다. 비록 위와 같은 자기의 형태, 태토 및 유색은 변해왔으나, 당대부터 지금까지 천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차를 즐기는 이들의 사랑을 받아오고 있다. 이는 명.청 시기의 의흥(宜興)의 자사(紫砂), 그리고 복건과 광동에서 많이 제작하던 백니우(白泥尤)에서도 그 형태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송(宋)
송 길주요(吉州窯)흑유목엽문다완(黑釉木葉紋茶碗)
  • 높이 6.8cm 구경(口徑) 11.0cm 족경(足徑) 8.2cm
삿갓형의 다잔(茶盞)으로, 작품 전체에 흑유(黑釉)가 발라져 있으며, 구연부의 테두리 부분은 동으로 상감되어 있다. 내부 바닥은 살짝 볼록하게 솟아있고, 내벽에는 고엽문(枯葉紋) 장식이 있다. 엽문은 갈황색이고, 청색과 흰색의 세밀한 선으로 채워져있다. 바닥부분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았고, 태질이 거칠며 회황색을 띠고 있다. 기벽에는 물레로 제작한 흔적이 남아있고, 권족에는 유약을 바른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유색은 칠흑색이고, 유면에는 황색의 종안(棕眼)이 드러나있다.

전지첩화흑유완기(剪紙貼花黑釉碗器)는 강서 길주요 (江西吉州窯)만의 독창적인 장식 기법으로 꾸며졌는데, 목엽(木葉), 매화(梅花), 용봉(龍鳳) 또는 문자 등의 첩화 도안 문양이 일반적이다. 흑유목엽완은 그 대표작이라 할 수 있다. 이 기법은 아직 굽지 않은 자기 위에 철 성분이 함유된 흑갈색의 유약을 먼저 바른 후, 흑유 위에 철분 성분이 비교적 낮은 갈황색으로 물들인 목엽을 붙인 후 한 번 구워내는데, 이를 통해 검은 바탕 위에 매우 흥미로운 고엽 장식이 생겨난다. 이러한 장식은 차를 마실 때 고엽이 보이는 듯 보이지 않는 듯 하여 남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러한 목엽문은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뽕잎 문양이라고 추측되고 있다. 이는 강서 백장사(百丈寺)의 선원다례(禪院茶禮) 유행과 관련이 있다. 《백장청규 (百丈清規)》〈부다탕(赴茶湯)〉의 내용 중, 사원에서 차를 사용하는 방법, 작용 및 의의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남송 강서파 시인인 진여의(陳與義)의「측백나무는 우리로 하여금 불법(佛法)을 깨닫게 하고, 뽕잎은 선(禪)의 경지로 이끈다 (柏樹解說法, 桑葉能通禪)」의 선(禪)에서의 차문화 미학과 관련이 있다.
명(明) 선덕(宣德
보석홍다종(寶石紅茶鍾)
  • 철연옥벽차탁–신석기시대 용산문화 말기에서 상대(까지)
  • 높이 5.2cm 구경(口徑) 10.2cm 족경(足徑) 4.3cm 높이 1.4cm 구경(口徑) 6.8cm 테두리 지름 11.3cm
이 작품은 주둥이가 살짝 벌어진 전형적인 다종(茶鍾)의 형태를 하고 있다. 바닥 부분을 제외한 작품 전체에 홍유(紅釉)가 칠해져있고, 유색은 선명한 홍색이다. 귤피문(橘皮紋)과 종안(棕眼)이 뚜렷하게 드러나있고, 주둥이와 바닥 받침의 테두리에 각각 흰색의 띠 문양이 둘러져 있다. 바닥 부분에 가까워질 수록 백유(白釉)에 청색빛이 감돈다. 태골은 비교적 두꺼운 편이며, 질감은 단단하지만 세밀하고 매끄럽다. 흰 바닥 부분에는 「대명선덕년제(大明宣德年製)」라는 6글자가 2 줄의 해서체로 얕게 새겨져있고, 두 겹의 사각형이 테두리를 이루고 있다. 선덕보석홍유(宣德寶石紅釉)는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은 명 작품이었다.명대 왕세무(王世懋)는 《규천외승(窺天外乘)》에서 선덕요(宣德窯)에 대해서 언급하였는데, 선명한 붉은 색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고 기록하였다.보석홍다종(寶石紅茶鍾)의 구경은 10cm 정도인데, 소위 명초의 홍무다종(洪武茶鍾)이라고 불리는 다종과 후에《강서성대지(江西省大志)》에 기재된 가정백자암용문다종(嘉靖白瓷暗龍紋茶鍾)은 그 크기, 형태 및 구조가 매우 흡사하다. 이를 통해 다종의 양식이 명 초기때 부터 궁중에서 규격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선덕보석홍다종(宣德寶石紅茶鍾)은 청대 건륭제에 이르기까지 큰 사랑을 받았는데, 이로 인해 특별히 신석기시대의 철연옥벽(凸緣玉璧)으로 차탁을 만들었다. 볼록한 가장자리 면에는 건륭34년(기축.1769) 및 〈영고옥완탁자(詠古玉椀托子)〉라는 황제의 시가 함께 새겨져있다.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둥근 기벽 아래로 이를 지탱하는 다리가 있으니, 안에 담긴 것이 쏟아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왕조가 바뀌고 화초가 시들어버리니, 긴 세월동안 땅 속에 뭍혀 갈색이 되었구나. 버들개지 가득한 마을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 이 옥완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같겠지. 이토록 순결하고 아름다운 너는 보배로 여김 받아 마땅하니, 당초 너는 누구의 손에서 사랑받았을까 궁금하구나.
청(清) 건륭(乾隆)
6년 양채번련문홍지다호(洋彩番蓮紋紅地茶壺)
  • 높이16.5cm 구경(口徑)5.5cm 족경(足徑)5.7cm
위 다호(茶壺)는 곧고 둥근 주둥이, 타원형의 복부, 다소 좁은 바닥, 긴 곡선의 주구, 활 모양의 손잡이 형태를 이루고 있다. 손잡이의 안쪽 상단에는 통기공(通氣孔)이 하나 뚫려있다. 낮은 권족(圈足)은 바깥으로 살짝 삐쳐있으며, 반달 모양의 뚜껑에는 동그란 뚜껑 손잡이가 달려있다. 뚜껑 손잡이의 측면과 뚜껑 안쪽에는 통기공이 각각 하나씩 뚫려있다. 다호의 내부는 바닥 부분까지 모두 푸른빛을 띤 녹색 유약이 발라져있고, 목과 권족 부분을 제외한 기벽 외부 전체에는 자홍색 바탕 위의 권초문(卷草紋)이 새겨져 있으며, 그 나머지 부분에는 4송이의 연꽃이 채회되어있다. 목 부분은 2쌍의 이무기로 장식되어 있고, 어깨에는 여의문(如意紋)이, 바닥 주변에는 초엽문(蕉葉紋)이, 권족의 노란 바탕 위에는 화훼 도안의 문양이 한바퀴씩 돌아가며 장식되어 있다. 뚜껑의 손잡이에는 금이 발라져 있고, 가장자리에는 연판문(蓮瓣紋)이 한바퀴 둘러가며 장식되어 있다. 뚜껑 면에는 4개의 전지화엽(轉枝花葉)문양이 자리하고 있다. 태토는 얇고, 유색은 맑고 투명하며, 호의 바닥에는 푸른 글씨색의 「건륭년제(乾隆年製)」라는 4글자가 2줄의 전서체(篆書體)로 적혀있다. 낙관의 테두리는 두 겹의 사각형 형태를 하고 있다.

다종(茶鍾)의 주둥이는 약간 벌어졌으며, 깊고 곧은 기벽, 낮은 권족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다종 내부의 바닥은 살짝 볼록하고, 내부에는 하얀 유약이 발라져 있으며 문양은 없다. 외벽에는 자홍색 바탕에 권초문(卷草紋)이 새겨져있고, 3 송이의 번련화(番蓮花)가 채회되어있다. 태골은 다소 무거운 편이며, 바닥에는 「대청건륭년제(大清乾隆年製)」라는 청화의 6글자가 3줄의 전서체(篆書體)로 남아있다. 위와 같이 타원형의 몸통, 깊은 기벽, 구경이 약 9cm정도인 완(碗)은 그 모습이 궁중 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차를 마실 때 쓰는 다종이다. 이는 청궁의 자료 중 건륭6년, 7년에 제작된 「건륭관양채금화홍지다종(乾隆款洋彩錦花紅地茶鍾)」, 그리고 기법은 위의 작품과 같으나 벌어진 주둥이, 구경은 약 12cm인 「건륭관양채금상첨화홍지다완(乾隆款洋彩錦上添花紅地茶碗)」이다.

위와 같은 자홍지추각양채기(紫紅地錐刻洋彩器)는 조각과 그림이 매우 정밀하고, 작품 내.외부 모두에 채유(彩釉)를 바를 뿐 아니라, 다호의 뚜껑 내부 및 바닥 부분, 심지어 권족 및 뚜껑의 권족 바닥 부분에까지 금채(金彩)를 가하였다. 비록 문양은 번잡스러운 부분이 있으나, 조각과 그림 공정 만큼은 상당히 공을 들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호와 다종의 문양 장식은 거의 동일하나, 다호의 낙관은 일반 염료를 사용한데 반해, 다종의 낙관은 전서체의 6글자를 청화를 이용하여 남겨놓았다.
청말민초(清末民初)
「시례」관홍전다담(是禮款紅磚茶擔)
  • 길이38.4 cm 너비 17.1 cm 높이55.4 cm
장방형의 홍전태다담(紅磚胎茶擔)은 조산공부차 (潮汕工夫茶)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형태이며, 조산에서는 이를「다담(茶擔)」이라고 부른다. 이는 각종 다기를 보관해두는 궤(櫃) 형태의 선반이며, 저온에서 구운 벽돌을 사용했다. 다담의 크기는 각기 달라도, 그 구조와 보관 물품은 대동소이하다. 다구는 일반적으로 상, 중, 하의 3개의 단에 나뉘어 보관되는데, 차 전문 학자들의 고증에 의하면, 상단의 우측에는 다로(茶爐)를 놓는다고 한다. 이 곳에는 3종류의 개방구(開放口)가 있다. 가장 위쪽에는 큰 원형의 개방구가 있는데, 이는 다로를 집어 넣기 편하기 위함이다. 앞쪽에는 8각형의 부채꼴 형태를 한 통풍구가 있고, 뒤쪽에는 반원형의 산열구(散熱口)가 있다. 다로는 우측의 상단과 중단의 공간을 차지한다. 상단의 좌측 위쪽에는 해당화 형태의 개방구가 있는데, 이는 해당화 형태의 다엽관을 넣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그 아래인 중단의 좌측에는 커다란 사각형의 개방구가 있는데 이 곳에 다호, 다배 등과 같은 다기를 보관한다. 하단 전체면의 우측에는 옆으로 기울어진 꽃병 몸통 형태의 개방구가 뚫려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꽃병의 구연부와 모란꽃 한 송이가 벽돌 위에 조각되어 있다. 즉 위쪽은 채워져있고 아래쪽은 비어있는 독특한 형태의 꽃병과 꽃의 장식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 안에는 숯을 담아두는데, 숯 보관용 바구니와 비슷한 용도이다. 이 칸의 뒤쪽에는 반원 형태의 작은 구멍이 뚫려있는데, 이는 환기를 위한 용도이다. 다담의 양쪽 측면 역시 3단으로 나뉘어 있다. 하단에는 각각 부채꼴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는 다담을 들 때 편리하기 위함이다. 다담 뒤쪽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상,하 양쪽의 두 개의 반원형 구멍만이 있을 뿐, 그 어떤 장식도 없다.

다담의 장식은 정면과 양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정면 중앙의 문미(門楣) 위쪽에는「시례(是禮)」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다담의 사용 함의를 드러낸 것이다. 왼쪽에는 동물을 타고 있는 인물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고, 통풍구 아래쪽은 태극팔괘의 도안으로 장식되어 있다. 하단에는 위에서 언급했던 꽃병과 꽃으로 꾸며져 있고, 다담 곳곳과 테두리 부분에는 회문(回文)과 아름다운 문양들, 그리고 꽃 문양이 돌아가며 장식되어 있다. 다담 양 측면의 위쪽에는 연꽃이 조각되어있고, 중단에는 병(瓶)을 받치고 있는 연꽃 문양과 붓을 감고 있는 연꽃 문양이 있다. 이와 같은 장식은 도교의 잡보문(雜寶紋)으로 추측되며, 정면의 태극팔괘 문양과 상응된다.

청말 민국 시기의 조산 지역 선비였던 옹휘동(翁輝東1885-1965)은 그의 저서에 〈공부차(工夫茶)〉에는 다호(茶壺), 개구(蓋甌), 다배(茶杯) 등의 18가지 다기가 있다고 기록하였다. 그 중 그가 언급했던 마지막 다기가 바로 다담이었고, 이를 통해 다담이 조산 지역에서 상당히 성행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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