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메이지 시대 19세기 말 일본 메이지 시대
시대 전차제람다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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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18.0cm 길이21.0cm 너비15.0cm
전차(煎茶) 다기조(茶器組)를 넣는 손잡이 달린 작은 바구니로, 야외에서 차를 마실 때 사용했다. 전체 구성은 백니(白泥)로 만든 풍로(風爐), 측면에 손잡이가 달린 물 끓이기용 백니 주전자, 주니(朱泥)로 만든 다호(茶壺), 청화배(青花杯), 동 차탁(銅茶托), 주석으로 제작한 다엽관(茶葉罐), 대나무를 조각해 만든 차칙(茶則), 청화 향합(香合), 동 향병(銅香瓶), 숯을 집기 위한 동 소재의 젓가락, 불경, 불상 손잡이 모양의 동인(銅印), 사각 칠합(漆盒), 용 문양의 동 거울, 등나무 방석이며, 총 24개이다. 이 모든 물건을 대나무를 엮어 만든 바구니에 넣었고, 휴대하기 용이했다.
백니 풍로와 백니 수소호(燒水壺)는 물을 끓일 때 사용하였다. 풍로는 진흙의 태토가 치밀하고 통풍구는 비교적 낮은 편이다. 바닥에는 송재(松齋)라는 관인(官印)이 찍혀있다. 측면에 손잡이가 달려있는 수소호는 주구가 짧고, 둥근 복부의 형태를 하고 있다. 원호(圓弧)형의 바닥 내부는 오목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는 열이 더 빠르게 전도되기 위함이다. 측면의 손잡이 내부는 비어있고, 태토는 얇으며, 작품은 가벼운 편이다. 주니소호(朱泥小壺)와 청화배(青花杯)는 차를 우리고 마시기 위한 다기이다. 주니호는 곧고 짧은 주구와 곡선형의 손잡이 형태를 하고 있으며, 바닥에는 맹신(孟臣)이라는 낙관이 찍혀있다. 이는 일본 전차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구륜주(具輪珠)의 형태이나, 뚜껑이 비교적 낮은 편이다. 5개의 작은 청화배의 외벽에는 운학(雲鶴紋)과 잡보문(雜寶紋)이 그려져있고, 구연부 안쪽에는 전지화훼(轉枝花卉) 문양이 한 바퀴 둘러가며 장식되어 있다. 바닥에는 청화를 이용한「구곡(九谷)」이라는 낙관이 남아있다. 위의 4종류 다기는 III-1-5의 공부다기조(工夫茶器組)와 비교해볼 수 있다. 청대 중엽, 복건과 광동 지역의 공부차(工夫茶)는 「공부차사보(工夫茶四寶)」를 중시했는데, 이는 조산풍로(潮汕風爐), 옥서외(玉書煨:물을 끓이는 용도의 주전자) , 맹신관(孟臣罐: 차를 우리는 다호), 약침구(若琛甌: 우려진 차를 담는 잔)이며, 위의 두 다기조는 매우 흡사한 구성을 보인다.
주석으로 제작한 다엽관은 둥근 뚜껑, 평평한 어깨 모양을 하고 있다. 몸통은 납작하며, 정면에서는 반원의 형태로 보인다. 또한 바깥을 향해 삐친 4개의 다리가 있으며, 바닥에는「왕동(王東)」이라는 낙관이 양각으로 새겨져있다. 대나무로 조각된 차측(茶則)의 표면에는 인물 좌상과 「자신은 마음 속이 가을달처럼 둥글고 밝다하나, 마음 속은 어지럽고 어두울지 누가 알겠는가. (強謂吾心似秋月,爭知肚裡暗昏) 」라는 선종의 가르침이 새겨져있어 여유로운 문인의 풍격이 느껴진다.
장방형의 죽편 바구니는 안감으로 단문(團紋)으로 장식된 암화단(暗花緞)을 사용하였다. 위와 같은 형태의 바구니는 대부분 중국 만청 시기에 제작되었고, 다구의 수납 뿐만 아니라, 다석(茶席)의 장식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차를 즐김에 있어서 전차도(煎茶道)를 체현해낼 수 있는 향기(香器)와 문방용구 등의 물건 뿐만 아니라, 금석서화(金石書畫)를 감상하며 그 풍취를 더하였다.다기는 처음부터 한 조(組)가 아니었고, 후에 하나씩 더해진 것이다.